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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암면 사랑방 연화도 이야기
2012-03-26 16:23:51
배수열(마암면) <> 조회수 2274
113.130.182.131

 ▣ 부처님의 섬,
   통영 연화도 여행기

◐여행 기간 : 2011년 2월 24일 목요일-2월 25일 금요일, 1박 2일
◐여정 : 부산-통영시 서호동 여객선 터미널-연화도-박경리 기념관-고성 상리면 문수암, 현수암-부산

 

한려수도 다도해답게 섬들로 꽉 차 있다. ‘만지도’도 있다.

● 옛 추억 속에서

“친구야, 어, 고마워!”
“친구 덕분에 이번 연화도 여행은 참으로 보람되고 즐거워서.”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1979년 여름에 고향 친구 3명이 뜻밖에 의견일치가 되어 달려 간 곳이 오늘 우리 일행이 찾는 연화도이다. 그 때 셋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냥 연화도 선박출입통제소에 근무하던 친구(당시 순경 김00)를 찾아갔다. 친구는 우리를 반가이 맞았다. 마침 무더운 여름이라 친구는 우리에게 ‘작살’을 사용하여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가 하면, 작살로 물고기를 잡아 손수 회를 쳐 주기도 했다. 그 친구는 섬에 얼마 동안 살더니 뱃사람이 다 되어 버렸다. 그 날 저녁에는 연화도 사람들과 함께 배를 타고 어장을 하러 갔다. 우리가 타고 간 어선에는 몇 번 그물을 쳤으나 허탕만 쳤다. 그런데 삼천포(지금의 사천시)에서 왔다는 어부는 고기를 많이 잡았다. 인심 좋은 어부는 우리에게 오징어를 특히 많이 주었다. 먹성 좋던 젊은 시절이라 그 오징어를 그냥 삶아 먹물 채로 실컷 먹었다. 그야말로 포식했다. 아울러 술도 곁들여 밤을 거의 지새우며 정담을 나누었다. 그런데 아침이 되니 모두 화장실 앞에 줄을 섰다. 설사였다. 보통의 설사가 아닌, 무지하게 독한, 감당할 수 없는 설사였다. 좔좔-, 모두 얼굴이 창백하다. 그 고통을 견디다 못 해  우리는 서둘러 통영으로 나오는 첫배를 타고 나와 약을 사 먹고 여관방에서 하루 종일 끙끙 앓았다.
 
이번 연화도 여행은 30여 넌의 추억이 만든 것이다. 당시에 순경이었던 친구는 지금 경감이 되어 있을 정도의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초임지였던 연화도와의 여태 인연을 계속 맺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우리 일행의 연화도 여행도 그 친구의 도움으로 실행된 것이다.

 


◐ 통영 시내의 해산물을 즐긴 후 연화도로 향하다
2011년 2월 24일 목요일, 오전 9시 우리 부부는 부산에서 출발했다. 동마산 톨게이트에서 10시에 만나기로 한 일행보다 좀 빨리 도착하고 싶었다. 그런데 경주에 사시는 박00 형님 부부께서는 내가 출발할 무렵 벌써 도착했다는 전화를 하셨다. 여행에 대한 설렘으로 서두르셨나 보다. 우리 부부는 9시 50분경에 도착하여 주위를 두리번거리니 대구에 사시는 이00 형님 부부께서도 도착하셨다. 그런데 가장 가까이 사시는 김00 형님 부부께서 늦게 도착하셨다. ‘학교 정문 앞에 사는 학생이 지각 대장이라는 말이 있다’는 말에 모두 한바탕 웃었다.
곧 8명은 2대의 차에 분승하여 통영으로 출발했다. 오전 11시 30분경 통영시 서호동 연안 여객선 터미널 도착하여 연화도로 가는 배 시각을 알아보니, 13:00에 연화도로 가는 배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일단 점심부터 먹기로 하고 여객터미널 부근을 두리번거렸더니, 마침 저 멀리 보이는 ‘봄도다리쑥국(10,000원), 멍게 비빕밥(10,000원)’이라는 메뉴가 눈이 띠이지 않는가. 평소에 모두 먹고 싶었던 메뉴라며 차를 몰고 그 음식점으로 찾아가서 각각 좋아 하는 음식을 주문하여 맛있게 나누어 먹고 나오니, 12시 30분경 되었다.

그런데 여객선 터미널의 주차비 계산이 재미있었다. 24시간 주차는 5,000원이고, 1시간 주차는 1,500원이었다. 우리는 24시간 주차에 맞추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단체 여행이라 여행비를 아끼려는 투철한 사명감(?)의 발로라고 웃음 지으면서 말이다.

12시 40분경 개찰하고 부두로 나갔다. 우리들은 카페리호(소요 시간은 대략 45-50분)도 있고 쾌속선도 있는데, 시간 관계로 쾌속선을 탔다. 쾌속선의 배 삯은 1인당 11,000원, 우리들이 타고 갈 배는 쾌속선 ‘샹그릴라’, 연화도까지 30분 정도밖에 소요되지 않는다고 했다. 아직 날씨가 춥고 평일이어서 그런지 탑승객은 몇 되지 않았다. 여름이면 여행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고 하는데 오늘은 너무 한산해서 좀 붐볐으면 하는 마음도 생겼다. 
                           

                              샹그릴라 쾌속선

우리들이 타고 가는 배는 연화도에 들리고 나서 욕지도에 간다. 그래서 우리가 가는 연화도는 욕지도보다 가까운 곳이다. 이렇게 섬 지방으로 한 번 오기가 어려우니 욕지도에까지 가서 관광 후, 연화도에 와서 숙박하는 것이 좋겠다는 등 분분한 의견이 있었으나 본래의 목적지가 연화도이고 욕지도는 차로써 일주해야 하는데 차를 안 가지고 가니 욕지도 탐방은 다음으로 미루자는 의견이 우세여서 결국 본래 계획대로 연화도만 목적지로 삼았다.

드디어 배는 고동을 울리며 통영 서호항을 뒤로 하고 통영 서호항에서 남쪽으로 24km가량 떨어진 연화도로 향했다. 나는 배의 맨 상층 뱃전의 갑판으로 올라갔다. 어린아이처럼 신이 났다. 바다 한가운데를 달리는 상쾌한 기분에 젖어 있다가 얼굴을 때리는 차가운 바람에 할 수 없이 따뜻한 선실로 다시 내려가기를 되풀이하기도 했다. 그런데 선실에도 창문을 내어 마치 넘실대는 파란 바다가 창으로 밀려드는 것 같은 즐거움을 가질 수 있었다.
서호항을 빠져 나오니 등대도 보이고 도남동의 금호 마리나 리조트도, 본래 통영 유일한 호텔이었는데 그 호텔을 헐고 윤이상 음악당을 짓는다는 옛 호텔 터도 보였다. 고기 냄새 풀풀 풍기는 배의 무리도 지나가고, 저 멀리 통영 산양면을 일주하는 도로가 빤히 보인다. 오래 전에 차로써 그 도로를 일주했을 때 너무나 아름다워 탄성을 질렀던 생각이 난다. 달마공원, 수산과학관도 보인다. 그러다가 벌써 배는 여름이면 해수욕장으로 그 명성이 자자한 비진도 해수욕장을 지척에 두고 있었다.
                   

 

 

 

 


역시 다도해. 섬 많은 남해이다 ↑

 


날씨도 좋아 파란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며 물거품에 하염없는 나래를 펼쳤다 →

 

◐ 여장을 풀다
배전에 부서지는 물거품 속에 잡생각을 섞어버릴 때 쯤 해서 30여 분이 흘렀을까? 서서히 배의 속도가 느려진다. 여기가 연화도이다. 지금 시각이 13:35이다. 생각보다 작고 소박한 섬이었다. 배를 타고 오다 멀리서 바라본 연화도는 꽃잎이 하나둘씩 떨어진 연꽃과 같기도 하고, 발톱을 웅크린 용과도 같다고 느꼈는데, 포구에 들어서니 아늑한 엄마의 품과 같았다. 그런데 섬주민은 몇 십 명밖에 되지 않을 듯하거니와 농토는 거의 없고 어업 활동이 주생활수단인 듯 했다. 30여 년 전 아무런 준비 없이 불쑥 떠오른 생각으로 평상복에 고무신 질질 끌면서 친구 찾아 무작정 왔던 곳이다. 그때와는 부두 모양이 달라진 것 같다. 바다를 많이 매립했구나.
                    

 

 

 

 


우리 일행을 맨 먼저 맞이하는
마을 표지석 ↑

 

연화도 부두에 정박하고 있는
어선들 →

 

 

 


← 우리들이 묵은 숙소,
연화리조트
친구가 소개해 준 서환희(010-8553-5705) 씨가 우리들을 마중 나왔다. 반가웠다.  그는 우리들이 오늘 저녁에 묵을 숙소인 연화리조트로 안내했다.

 


◐ 바로 연화도 관광에 나서다
                             
                          연화도의 개념도

이제 연화도의 비경을 마음껏 즐기는 것이다.
우리가 묵을 숙소 맞은편에 나무계단으로 등산길을 아주 예쁘게 꾸며 놓았다. 우리는 주위의 경관을 구경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옮겼다. 나무 두릅나무가 유난히도 많았다. 봄이 되면 두릅잎 따기에 재미가 가득할 것 같았다. 해발 162미터 지점에 이르러 그곳에 있는 벤치에 잠시 앉았다가 뒤 따라 오는 일행들을 기다렸다. 그러나 뒤 따라 오는 일행들은 뭣을 하는지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아마 사진을 찍는 등 아름다운 풍광의 이야기에 도취되어 있는가 보다. 조금 더 가니 내려가는 등성이에 정자가 있고 낡아 헐어진 헌 집이 두어 채 있었다. 예전에 저 산 중턱의 헌 집에 살았던 사람들은 누구였으며 지금은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人傑)은 간 데 없다더니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드디어 해발 212.2미터의 연화봉에 도달했다.

봉우리에는 엄청 큰 부처가 서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시주하여 세운 부처였다.

남해 바다를 바라보는 부처(아미타 대불)의 모습이 너무나 자비롭다. 저 자비로움이 모든 인간의 죄악을 사해 주었으며 하는 바람을 간절히 소망했다. 한 평생 살면서 인간들이 저지른 크고 작은 죄악이 얼마나 많은가? 탐욕으로 가득한 인간들의 죄를 해탈하게 하소서.
섬의 주봉인 낙가산 연화봉 정상의 부처(아미타 대불)상 앞에 남해 바다를 향해 세워 둔 정자에 앉아 한려수도의 크고 작은 비경을 맛보니, 신선이 된 느낌이었다.

◐ 연화도에 서린 전설을 상기하며
연화봉 정상을 뒤에 두고 나무 계단을 따라 내려오니 사명대사의 토굴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연화도에는 사명대사, 이순신 장군 등에 관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연산군의 숭유억불정책에 의해 한 스님이 1496년경에 성운, 성연, 성월이라는 세 명의 비구니 제자와 함께 이 곳 연화도로 들어와 은신했다고 한다. 스님은 연화도의 토굴에서 수행 득도하여 열반에 드시면서 자신의 시신을 바다에 수장할 것을 유언하였고 제자들이 스승의 뜻을 받들어 수장하자 얼마 후 바다에서 큰 연꽃이 피어올랐다 한다. 그래서 그 후 그 스님을 연화도인이라 불렀고, 이 섬 이름을 연화도라 불렀다고 했다.
그 후 약 70년이 지난 때에 연화도사의 불심을 계승하기 위해 이 섬에 들어온 사명대사도 토굴에서 수도했다고 한다. 지금 내가 찾은 사당이 바로 사명대사가 수두했던 토굴이다.
한편 사명대사를 찿아 헤매던 대사의 누이 보은, 약혼녀 보련, 대사를 짝사랑하다 수도승이 된 보월, 이 세 비구니들도 대사를 찾아 와 이 섬에서 도를 딲아 득도했고, 이들은 후에 임진란이 발발할 것을 예측하여 이순신 장군을 만나 거북선 제조법, 해상지리법, 천풍기상법 등을 우리 수군에게 알려 주었다고도 한다.
그런 연유로 섬 곳곳에 불교와 관련된 재미난 설화가 전해지고 있는 것 같다. 토굴 속 사당 속에 앉아있는 사명대사의 모습을 보며, 나라를 구하신 거룩한 모습을 우러러 보았다. 그리고 나란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


◐ 해수관음보살상과 보덕암
사명대사의 토굴을 지나 내려오니, 해수관음보살상이 눈에 띠고 그 아래쪽 절벽 위에 지은 보덕암과 푸른 바다, 이들과 어우러진 점점이 이어진 섬의 풍경이 쫙 펼쳐졌다. 뭍에만 살아서 그런지 드넓은 바다에 한가로이 떠 있는 섬의 풍경은 내겐 늘 아름다운 낭만으로 와 닿는다. 험한 바다를 끼고 살아가는 섬사람들은 팔자 늘어진 소리를 한다며 혀를 끌끌 찰지도 모를 일이겠지만 말이다.

              
                

 

 

 


         남해바다 저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해수관음보살상과 보덕암

               깍아지른 계곡 한편에 연등으로 덮여 있는 보덕암

연화도의 보덕암은 쉬운 발걸음으로, 쉬운 마음 먹음으로는 가기 힘든 곳이다. 보덕암과 해수관음보살은 연화사 뒤쪽 언덕을 넘어 가파른 절벽 위에 있다. 보덕암은 5층으로 지은 특이한 구조였다.
                   
                    보덕암에서 바라본 앞바다의 모습

남해 금산 보리암이나 이 보덕암이 다 같이 바다를 향한 암자이지만 남해 금산 보리암에 결코 뒤지지 않는 풍경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보덕암은 연화도가 '불교 성지 순례지'로서 명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한다.

                 

 

 

 


↑보덕암으로 오가는 길가에 피어 있는 동백꽃

보덕암으로 오가는 길가의 계단식 밭, 약초를 재배하는 밭으로 다랭이 논처럼 아름다웠다. →
◐ 용머리 바위를 향하다
보덕암의 이곳 저곳을 순례하고 아름답게 가꾼 동백 꽃길을 따라 곱게 얼굴을 내민 선홍색의 동백꽃을 보며 느긋하게 걷는 기분을 어떻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나는 절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보덕암에서 다시 산등성이로 오르니 5층 석탑이 우리를 맞았다. 새로 세운 5층 석탑이 연화도를 불교성지의 입지를 더해 주었다.

산 능선 위 5층 석탑을 거쳐 가는 길은 감칠맛이 났다. "우와"하는 감탄사를 두어 번이나 쏟아내야 했다. 5층 석탑이 있는 이곳은 용머리를 관찰할 수 있는 명당이었다. 우리 일행은 용머리 바위를 향해 열심히 걸어갔다. 등산 코스를 제법 규모 있게 단장해 두었다.

 

 

 

    

 

단장된 등산로와 의자 ↑ →

제법 걸었는데도 피곤한 줄 몰랐다. 아무도 힘들다는 말을 아니 했다. 아마 모두 경치에 도취된 덕분인가 했다. 먼저 간 일행들이 저 만치 간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통영 8경 중의 하나인 연화도 용머리 바위가 시퍼런 바다를 유유히 헤엄쳐 나가는 용의 날카로운 발톱을 내밀며 빨리 와서 함께 놀자고 손짓한다.  


용머리라고 부르는 곳은 섬의 동쪽 끝의 '네바위'다. 네 개의 바위가 어울린 곳으로 기암괴석이 솟아 절경을 이루는 곳이다. 감탄이 절로 터져 나올 정도로 빼어난 기암괴석들이 행렬을 지은 곳이다.

남해의 망망대해, 그림 같은 한려수도의 크고 작은 섬들. 정상의 바위와 어우러진 용머리의 풍경을 보는 순간 감탄사를 뱉어내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해금강 못지 않은 풍경이 펼쳐진다. 한산도, 욕지도, 사량도, 비진도 등은 외지인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만 연화도의 아름다움은 그렇지 않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연화도도 그들 섬 못지 않는 명성을 얻으리라 기대해 본다.

용머리 ‘네바위’를 향해 가니, 용바위 입구에는 전망대가 있어, 그 전망대에 오르니, 그 전망대는 또 다른 남해 바다의 비경을 선물했다.

                    용바위 입구의 전망대

 

 

 

↑대(아들)바위와
← 대(아들)바위로 오르는
   사닥다리

 

용바위 가는 갈목의 대(아들)바위에 오르는 길은 험난한 길로,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절벽이었다. 그 절벽 바위 위에 자라고 있는 분재같은 소나무가 눈길을 끌었다. 아쉽게도 바위들이 몹시 험해 용머리 끝까지 갈 수는 없었지만, 한참이나 그 신비한 풍경에 취해 서 있었다.  갈매기 우는 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오는, 정겨움이 내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동두마을에서 용바위인 '네바위' 가까이 갈 수 있다지만 ‘대(아들)바위’에서 내려와 동두마을 입구에 앉자마자 모두 배가 고프고 피곤하다며 숙소로 되돌아 갈 것을 원했다. 다수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지.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시멘포장도로였다.
200여 명의 주민이 사는 연화도엔 두 갈래 길뿐이다. 본촌마을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연화사 입구에서 보덕암 가는 길과 동두마을 가는 길, 이렇게 두 갈래로 나뉜다. 물론 동두마을엔 해수욕장과 용머리를 올라갈 수 있는 등산로가 이어져 있어 용머리를 올라갈 수 있기에 간다. 그런데 우리 일헹이 동두마을로 올 적에는 등산로를 따라 연화봉을 거쳐 왔고 신작로로는 오지 않았다. 그래서 올 적에 들리지 못한, 동두마을에서 본촌마을로 가는 도중에 있는  ‘연화사’에 들려 오늘의 하이라이트 피날레를 장식해야겠다.

 

◐ 연화사에서 잠시 속세와 이별하다

                         보타낙가산 연화사 입구

본촌 마을에 오기 전에 들린 곳은 연화사, 역사는 매우 짧은 절이지만 방문객을 포근하게 감싸는 듯한 예쁜 절이었다. 쌍계사 조실인 한국불교계에서도 유명한 고산 스님이 1998년에 창건한 관음도량. 불교 도량인 연화사이다. 연화사 대웅전의 본존불인 아미타여래불과 좌우협시불, 대웅전 앞마당의 사찰 창건비명과 스리랑카에서 직접 모셔온 석가여래 진신사리 창건공덕비, 8각 9층탑도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또한 기와로 쌓은 담도 아주 아름다웠다. 고산 스님의 명성으로 법문을 배우러 오는 이가 줄을 잇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사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사천왕상과 인사하고 절 밖의 탑도 올려다보고 대웅전 밖에서 부처님을 향해 절도 해보며 속세에서 멀어지는 그 기분을 즐겼다고 할까? 하여튼 그런 감정을 고이 간직하며 조금 후 연화사와 작별했다.

연화사에 들린 후 본촌 마을로 내려오니 선착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연화분교가 포근한 날씨처럼 포근하게 느껴지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마침 선생님이 계시기에 분교 학생이 모두 몇 명이냐고 물었더니 6명이라고 했다. 6명의 학생을 위해 저 큰 건물을 짓고  많은 운영비를 쓰는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임에 틀림없다.

3시간 가량 연화도 산행 겸 관광을 했다. 이번 연화도 산행은 즐겁고 보람 있는,  낭만이 가득한 산행이었다.

산행 후, 도착한 곳이 미리 예약해 둔 연화횟집, 포장 마차처럼 지은 간이 횟집이었다. 횟집은 천막이어서 허수룩했으나 주인 아주머니의 따뜻한 정은 최고급이었다. 팔딱팔딱 뛰면서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볼락, 돔 등 자연산 물고기를 회로 쳐서 술과 함께 먹는 맛이란 그 무엇과 비길 수 없었다. 달달한 꿀맛이었다. 회도 값이 싸서 한 쟁반 가득인데도 30,000원, 우리 일행 8명이 2쟁반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내가 우겨 한 쟁반 더 시켜 먹고 나니 세상에 부러운 게 없었다. 얼근하게 취해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서도 오랜만에 만난 회포를 늦은 밤까지 풀고 잠자리에 들었다.

 

◐ 연화도와 아쉬운 이별
2011년 2월 25일 금요일,  07:00에 기상했다. 기상하자마자 대구에 사시는 이00 형님께서 어제 못 가본 곳인 연화도 동쪽에 위치한 숲 체험장(삼림욕장)으로 같이 갈 것을 권유했다. 아침 식사가 09:00에 준비된다고 했으니 아침 산보 시간이 충분했다. 그런데 나만 가지 않았다. 내가 잠이 많은 것도 못 간 이유지만 뒷정리로 위해 남았다.
09:00 좀 안 되어 어제 그 식당, 연화도 횟집에 가니 주인 아줌마께서 얼큰하게 생선 미역국(6,000원)을 끓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회자정리(會者定離), 우리는 연화도에 하루밤 정분을 남겨두고 아쉽지만 10:40에 어제 타고 들어온 쾌속선 ‘샹그릴라’를 타고 통영 서호항에 11:15분에 입항했다.
  
◐ ‘토지’의 작가 박경리를 찾다         
일행은 배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박경리 기념관을 찾았다. 본래의 계획은 통영 미륵산 케이블카를 타고 남해 바다의 아름다움을 즐기려 했으나 타 본 사람도 있다고 하고 다른 일행도 별로 흥미를 느끼지 않아 바로 박경리 기념관으로 갔다.
기념관은 통영시 산양읍 신전리에 있었다.
박경리는 고향 통영을 배경으로 한 소설 ‘김약국의 딸들’을 통하여 한 가족의 몰락과정을 다루어 작가의 작품 세계에 하나의 분수령을 이루었다 또한 대하소설 <토지>를 집필하여 4대에 걸친 인물들을 통해 민중의 삶과 한(恨)을 새로이 부각시킴으로써 한국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작가이다. 박경리 기념관은 그녀를 기념하고, 그녀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제공한 고향 통영을 소개함으로써 선생의 문학세계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선생의 묘소와 인접한 곳에 마련되어 있었다.
                      박경리 기념관의 모습.

그런데 박경리 기념관의 외양의 첫인상이 매우 딱딱하게 느껴져 어리둥절했다. 박경리가 누구인가! 그의 말년에는 대도시의 혼잡함을 떠나 원주 산골에서 밭을 일구며 자연과 생명사상을 바탕으로 살았지 않은가? 그런 점을 고려할 때, 그의 생전의 삶과는 좀 어울리지 않게 기념관이 지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혼잡한 대도시가 아닌 이런 한적하고 아름다운 바닷가의 마을에 우리나라의 대문호를 기념하는, 길이 남겨질 기념관일진데 그의 삶에 걸맞는 모습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기념관에서 하나하나 꼼꼼하게 관람했다.
그는 소설뿐만 아니라 시도 썼는데 시 중에서 '옛날의 그 집' 시의 마지막 연의

   '아아 편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라는 구절은 깊은 울림과 함께 철학적 명상을 인도하기도 했다.

시의 중간 쯤 부분, 그의 삶의 역정을 노래한 부분도 큰 울림을 주었다.

  ~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나를 지켜주는 것은
    오로지 적막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는
    늘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

외롭고 고독했으며 두렵기도 했던 젊은 나날들이 응축된 언어로 세상을 향하고 있는 글이었다.
      통영 앞 바다를 내려다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
              
                묘지에서 바라본 통영 앞 바다

묘지에도 들렸다. 기념관과 아주 가까이 있었다. 그녀가 묻힌 곳은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었다. 그녀가 사랑한 고향, 그녀의 소설에 배경이 된 통영. 그런 통영에 묻혔으니 얼마나 행복할까.

 

 

◐ 고성의 문수암, 현수암(보현사)에도 들리다
박경리 기념관에 들렸다가 나오니 거의 오후 1시경이 되었다.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났으나 모두 고성에 가서 밥 먹기를 원했다. 통영에서 고성까지 차로 3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이거니와 고성에 가면 싸고 맛있는 ‘한정식’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동영 중앙시장에 잠시 들렀다가 바로 고성읍으로 향했다.
14:00경에 고성에 도착했다. 먼저 00한정식(1인분 8,000원)에 갔더니, 준비된 음식이 모두 동이 나 손님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옆집으로 갔다. 옆집은 아직 음식이 남아 있는지 우리 일행을 반가이 맞았다.
부족한 음식을 끝없이 ‘리필’한 후에 점심 식사를 마치고, 고성의 사찰 순례에 나섰다. 우리나라의 어느 지방을 가든 사찰이 많다. 그러나 유구한 역사를 지닌 사찰은 드물다. 고성에는 ‘옥천사’와 ‘문수암’이 고찰로서의 품위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 시간 관계 상 두 사찰 모두를 순례할 수 없어 오늘은 ‘문수암’을 중심 삼아 순례하고 곁들여 그 이웃에 있는 보현사의 ‘현수암’에도 가기로 했다.
문수암은 고성읍에서 북쪽으로 고성군 상리면에 있다. 대한 불교 조계종 제13교구 본사 쌍계사의 말사(末寺)이다. 688년(신라 신문왕8)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는데, 걸인 모습을 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에게 이끌려 무이산을 오르다가 절경에 감탄하여 정상 바로 아래에 암자를 지었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는 절이다. 불가(佛家)에서 청량산(淸凉山)이라고도 부르는 무이산은 삼국시대부터 해동(海東)의 명승지였으며, 오늘날에도 수행도량으로서뿐만 아니라 한려수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빼어난 주변 절경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곳에 문수암이 있다. 현재의 건물들은 1959년 태풍 ‘사라호’ 때에 피해를 입어 새로 지은 건물들이라 했다.

 

 

 

 

 

 

 


문수암 ↑

문수암에서 바라 본
보현사(현수암) 약사여래 대불 →


우리들이 문수암의 대웅전을 참배했을 때, 대웅전 뒷편 절벽면에서 사람들이 고

개를 들고 절벽 틈새를 쳐다보고 있었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90도 꺾어진 바위 옆에 서서 절벽 틈새로 보면 사진 중앙부에 하얗게 보이는 것이 문수보살상과 보현보살상이라고 했다. 그런데 하도 보이지 않으니까, 아니 어느 것을 두고 말하는지 잘 모르니까 뭐 맘을 비워야 보인다고 했다. 뭐, 나는 결국 보지 못 했다. 나는 욕망의 화신인가 보다.

다음으로 간 곳은 보현사 현수암이다.

 

 

 

 

 

                   보현암과 현수암의 모습
    

 

 

 

 


현수암에서 바라본 문수암 ↑
문수암과 현수암을 오르는 길 →


현수암의 대불은 대불의 아래에도 부처가 위에도 부처가 있었다. 최근에 일으켰던 불사지만 대불사를 일으킨 것이었다.

현수암에서 내려다 본 고성 앞 남해바다의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하며 차를 타고 마산으로 향했다. 비록 1박 2일의 짧은 여정이지만 보람되고 즐거운 섬나라 여행이었다고, 일행 모두가 만족하는 모습에 나도 기뻤다. /2011-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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